보건복지부는 11월 28일, 「50인 이상 대규모 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와 「장애인거주시설 학대 예방 및 인권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시설 수용의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오히려 장애인거주시설의 학대를 방치하는 계획임을 규탄한다.

정부에 의한 구조적 학대임이 드러난 전수조사 결과

정부의 50인 이상 대규모 거주시설 전수조사 결과는 대규모 시설 환경이 인권침해의 구조임을 증명한다. 특히 극단적인 장기 수용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50인 이상 거주시설의 장애인 평균 입소 기간은 24.3년으로 이미 20~30년 장기수용 인원이 가장 많으며, 심지어 1%인 72명은 50년 이상 시설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생활공간의 96.3%가 한 방에 3명 이상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자율성이 박탈되어 있다. 96.5%가 심한 장애인이며 48.9%가 의사소통이 어려운 점은 한국 정부가 중증장애인을 사회에서 몰아내 시설로 격리해 온 부끄러운 역사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러한 구조적 학대를 은폐하고, 보도자료 내내 “대부분 긍정적 응답이었다”고 요약하며 문제의 본질을 축소했다. 중증장애인이 스스로의 피해를 외부에 알리기 어려운 취약성을 역이용해 장애인의 시설수용을 정당화하고 지속하는 이번 대책 발표는 제도적 학대를 영구하는 계획이다.

10년간 처참히 실패한 장애인학대 예방시스템, 개선 의지 없는 정부

이번 전수조사는 울산 태연재활원 대형 인권참사 이후 실시된 것이다. 태연재활원에서는 수백 건의 폭력이 자행되었지만, 울산시와 북구청의 지도감독에서는 단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도 지도감독 체계의 실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1년 365일 중 인권지킴이단 정기 회의 운영은 3.9회에 불과했고, 임시회의는 평균 0.13회로 사실상 운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3년간 인권상황을 단 한 번도 점검하지 않은 시설이 12개소나 있었음에도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인권지킴이단 구성에 있어 외부단원 비율을 강조하지만, ‘사실상 내부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는 이용자 가족도 외부 단원으로 포함된다. 근본적으로는 인권지킴이단 구성 권한 자체가 시설에 있기 때문에 시설의 영향력 아래 구성되는 기구에 불과하다. 점검 일정도 사전에 공유되는 인권 상황 점검은 형식에 그칠 뿐이다. 점검 결과를 지자체에 보고하는 적기 보고율이 61%라는 점 또한 그 적기가 무려 2주라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에는 허울에 가깝다. 즉, 정부의 조사 결과 자체가 장애인 학대 예방 시스템의 지난 10년간의 무능과 철저한 실패를 증명하는 셈이다. 태연재활원의 경우에도 인권지킴이단 회의에서 내부의 폭력적인 상황, 그에 대한 직원들의 묵인과 은폐가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채 대형 인권 참사를 낳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같은 한계를 외면한 채 ‘사전예방 강화’라는 실효성이 전무한 대책을 혁신적인 양 발표했다.

더 철처한 은폐를 주문하며 본질을 흐리는 정부의 보도준칙

정부는 지난 10년동안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로인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사건은 그대로 은폐되어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학대 발생의 구조적 원인이 정부가 방치한 시설 정책에 있음을 부정하고, 보도 내용만을 문제 삼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정부의「장애인학대 보도 권고 기준」은 오히려 구조적 학대에 대한 더 철저한 은폐를 종용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정부의 비호 속에 장애인거주시설은 행정처분 이력도 공개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현실에서는 이미 삼진아웃인 시설폐쇄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도 학대 사실을 알지 못했던 가족들이 조사기관의 결과를 부정하며 시설을 비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해외에서는 평과 결과는 물론이고 시설 학대와 같은 공공 사안이 발생할 경우 지역명, 시설명, 운영자, 과거 행정처분 이력, 현재 상황까지 정식으로 공개한다. 공개 자체가 재발 방지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도 권고 기준의 목적으로 제시한 제2의 인권침해 방지, 피해자 사생활 보호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후 조치의 해결 과정에 대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 또한 정부의 주요한 책무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본 조사결과보고서를 비롯한 지난 10년간 실시한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서와 학대 상황에 대한 처분 결과를 공개하라.

문제의 원인은 시설, 해답은 시설 확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학대 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시설의 유지와 확대를 전제한다. 밑빠진 시설 장독대에 정부 예산을 붓겠다는 식이다. 정부는 2011년 장애인복지법 개정 이후 장애인거주시설의 정원은 30인을 넘을 수 없음에도 14년이 지난 현재까지 효과적인 제재없이 방치해왔다. 그러나 이제와서 꺼내든 소규모 시설 전환 대책에도 장애인의 권리는 온데간데 없다. 장애인을 2~30년간 수용하며 권리를 박탈해 온 시설에 다시 독립형 주거서비스제공기관이나 의료집중형 전문서비스제공기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장애인을 ‘재수용’해 ‘시설격리를 영구화’하겠다는 대책이다. 이는 UN 장애인권리위원회가 일반논평 5호를 통해 제시한 ‘기존 시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주거 형태를 설립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 인권 기준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이다.

“어떠한 신규 시설도 당사국에 의하여 설립될 수 없으며, 기존 시설의 개조 또한 시설 거주자의 신체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시급한 조치가 아닌 이상 이루어질 수 없다. 시설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 시설 거주자들이 떠나고 새로운 거주자가 들어와서도 안 된다. 시설에서 확장된 이른바 ‘위성’ 주거 형태, 즉 개인적 생활의 모습(아파트 또는 단독 주택)을 취하고 있지만 시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주거 형태는 설립되어서는 안 된다.”

-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일반논평 5호(2017) -

시설 수용의 종식, 탈시설 지원법 제정으로 나아가야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났듯 시설 학대의 뿌리는 시설의 폐쇄성과 집단수용에 있다.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구조 그 자체를 바꾸지 않는한, 정부가 시설 학대를 제도적 학대로 인식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해답은 있다. 이미 국회에는 이러한 제도적 학대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탈시설 지원법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은 장애인거주시설의 신규설치를 금지하고, 현존 시설의 정원을 감축해 2041년까지 시설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갈 것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의 문제로 지적된 30인 이상 대형시설에 관해 본 법에서는 △현원 100인 이상의 시설은 법 시행 후 2년 이내 30인 이하로 감축하고, △현원 30인 이상 100인 미만의 시설은 법 시행 후 4년 이내 현원 30인 이하로 감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설의 단계적 폐지 과정에서 시설거주장애인과 가족에 대한 지원, 시설 근로자에 대한 고용 승계 또한 정부의 책임하에 ‘정의로운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규정한다. 탈시설 지원법의 내용은 낯선 대안이 아니며, 국/내외에서 시행되고 있는 ‘현재’다. 제도적인 시설 학대를 끝내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 보장을 위해 정부와 국회는 탈시설 지원법을 즉각 제정하라.

2025년 12월 1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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